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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터커 (1disc) (Tucker: The Man And His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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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사 또는 공급자 : Giga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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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제공 방식 : 출시사에서 제작한 방식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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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 Interactive Menus
- Scene Selection

Additional information

# 수상내역
제4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9) 프로덕션디자인상 딘 타불라리스
제23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1989) 남우조연상 딘 스톡웰
제4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89) 남우조연상 마틴 랜도
제1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1988) 남우조연상 마틴 랜도
제53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88) 남우조연상 딘 시톡웰

# 감독 소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1939. 4. 7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는 관현악단 지휘자였다.(후에 아들이 감독으로 출세하자 영화음악가로도 활동했다) 홉스틀러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다가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옮기면서 영화로 바꾸었다. 학생 시절에 이미 소형영화들을 감독했고, 미국 'B'급 영화의 거장 로저 코만(Roger Corman) 감독 밑에서 실력을 쌓았다. 66년에 < You're A Big Boy Now >라는 영화로 감독데뷰를 하며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계속해서 < Finian's Rainbow >(68), <빗속의 여인(The Rain People)>(69) 등의 수작을 발표했으나, 시대를 앞서가는 연출감각 탓인지 흥행은 신통치 못했다.70년에는 <팻튼 대전차 군단(Patton)>의 각본을 맡아 에드먼드 H.노스와 함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71년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 셀러 <대부>의 연출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대부>의 대성공으로 예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한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지금까지 고집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굴곡이 심하다.그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직접 제작을 했다), 감독상, 각색상의 3개를 안겨준 <속 대부(The Godfather Part II)>(74),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한 도청 소재의 영화 <컨버세이션>(74), 40년대 자동차 설계가 프레스튼 턱커의 일대기 <터커>(88) 등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뮤지칼에 도전한 <마음의 저편>(82), 복고풍의 드라마 <코튼 클럽>(84) 등은 혹평과 팬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코메디에 도전한 <페기 수 결혼하다>(86)는 캐슬린 터너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열연이 그의 별볼일 없는 연출을 살려주었다는 평을 감수해야만 했다.79년도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은 월남전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리면서도 형이상학적인(정신분석 또는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지금도 그 작품성에 대해서 논란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또한 청소년 드라마인 <아웃사이더>(82), <럼블 피쉬>(83)는 그의 진지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과연
청소년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냐 하는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90년에 야심적으로 공개한 <대부 3>가 실패로 돌아가자 상당히 실망을 했다. 그러나 <드라큐라>를 원작에 충실한 정통파 공포영화를 목표로 호화배역으로 그려졌다.

# 작품소개
1940년대에 장사속 위주의 대기업들에 대항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안전과 편의에 입각한 자동차를 설계했던 사나이 프레스턴 터커(Preston Tucker)의 일대기를 그린작품
유압식을 개선한 디스크 브레이크 장치, 깨지는 기존 유리에서 파편으로 튀는 자동차 유리 등 그가 만든 차들은 '미래의 자동차'라고 불리울 정도로 획기적인 것들이었으나, 끝내 그는 대기업과 그들에 의해 조종되는 정치 세력에 의해 좌절하고 만다. <대부>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코폴라의 가장 역작들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며, 전 연기진의 열연으로 더욱 영화가 돋보인다. 미국 음악계에서 이른바 '도시파'로 불리우는 뉴욕 음악가의 최고 싱어송 라이터 중 하나인 조 잭슨의 음악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48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은 산업 발달에 모아졌다. 아직 항공의 역사가 짧은 관계로 비행기쪽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가를 놓고 자동차 산업이 팽창하던 시절이다. 미국내에는 이미 '포드', '크라이슬러', 'GM', '플리마우스' 등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새로운 모델과 장착품들로 자동차 산업의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터커는 이들 굴지의 자동차 대메이커들과 맞서 40년대에 이미 80년대의 기능을 얹은 미래형 자동차를 개발한 인물로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는 '미래의 자동차를 오늘에'라는 모토로, 자동차 디자인은 물론 제작에 이르기까지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동시에 당시 자동차 산업의 메이저들로부터는 배반과 모함을 받고 법정시비에 휘말리면서 결국 터커 자신의 자동차 산업을 포기해야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노력과 기업윤리 그리고 기체 역학에 기본한 차체 설계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역사의 혁신으로 남아있으며 지금도 미국내에서는 '터커 자동차 애호 클럽'이 결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디트로이트에서의 자동차 제작자로서 시작해 법정시비에 휘말릴 때까지 터커는 자신의 피가 끓고 있는 한 인간을 위한 자동차 제작의 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 일은 이미 헨리 포드도 두 번이나 실패했었고 윌리스도 두 번 실패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오늘날 그들의 이름은 지구촌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니 실패하는 것은 창피해할 것이 아니요, 오로지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다."


줄거리

터커(Preston Tucker: 제프 브리지스 분)는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캐딜락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사환으로 지낸 것이 자동차와의 첫 인연이다. 터커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운송물을 나르면서도 머리는 항상 더 빠르고 효용성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었다. 그후 터커는 경찰 생활을 하면서 모터 사이클과 패트롤카를 타보게 된다. 이후로 포드 계열 회사에서 경영의 재질을 인정받고 피어스 에로사의 지역 판매 매니저를 맡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판매에 대한 자신이 붙은 터커는 혁신적인 자동차를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193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터커는 전투용 초고속 자동차를 만들었다. 시속 117킬로의 차체 위에 포탑을 장진할 것을 조건으로 한 이 전투차는 군사용으로 이용되지 못했다. 당시 계약은 터커에게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드는 게약이라서 디트로이트에 있는 그레함 피그 공장으로 하청을 주게 된다. 그러다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정부는 터커의 포탑에 대한 로열티와 특허권을 압수해버린다. 전쟁이 끝나자 터커는 자신의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것을 결심하고 1946년엔 50년 동안 새차 같은 성능을 갖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데. [스포일러] 그의 가족들을 비롯해 유능한 세일즈맨 에이브(Abe Karatz: 마틴 랜도 분)와 많은 기술자들의 든든한 후원으로 시작한 미래형 자동차 개발은 당시 3대 자동차 메이커 포드, GM, 크라이슬러와 결탁한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치고 만다. 터커가 새 차의 광고 홍보차 자리를 비운 사이에 메이저사의 압력으로 차의 설계가 바뀌고, 의회의 조사위원회는 터커를 사기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무서운 음모에 대항하는 방법은 한가지, 최종판결이 나기 전에 그가 차를 만들어낼 의도가 있다는 증거로 새차 50대를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터커는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를 만들었음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지만, 자동차 회사는 다른 곳에 압류되어버린다. {터커의 자동차는 단 50대 밖에 제작되지 않았지만, 그 중 46대는 지금까지도 거리를 누비고 있다. 터커의 혁신적인 공기 역학 스타일(Innovations of Aerodynamic Style) 차체와 패디드 대쉬(Padded Dash), 산산이 부서지는 안전 유리창(Pop-Out Windows), 안전 벨트(Seat Belts), 연료 분사(Fuel Injection), 디스크 브레이크(Disc Brakes) 등의 혁신적 장치들은 오늘날 자동차에서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터커는 재판 뒤 6년 뒤에 죽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영원할 것이다.